페인트 시너나 세제를 다룰 때 필요한 건 베임에 강한 장갑이 아니라 화학물질을 막는 장갑이다. 그 능력을 증명하는 인증이 EN ISO 374다. (← 작업장갑 인증 총정리에서 이어지는 글)
한 줄 요약
EN ISO 374는 장갑의 화학 방어력을 본다. 핵심은 셋이다. 화학물질이 장갑을 통과해 피부에 닿기까지 걸리는 시간(침투 등급 1~6 = 10~480분), 몇 가지 화학을 막느냐(Type A·B·C), 그리고 세균·바이러스 차단(EN 374-5)이다. 중요한 건 “막는다”가 아니라 “몇 분까지 버티느냐”다.
화학 보호는 왜 완전히 다른 세계인가
베임이나 마모는 눈에 보이는 손상이다. 구멍이 나면 끝이다. 화학은 다르다. 구멍이 없어도 위험하다.
방수 외투에 구멍이 없어도 오래 비를 맞으면 속이 젖는 것과 같다. 화학물질은 장갑에 멀쩡해 보여도 분자 단위로 재료를 뚫고 들어와(투과) 결국 피부에 닿는다. 그래서 화학 장갑은 “막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늦추느냐”로 평가한다.
헷갈리는 세 단어: 관통·투과·열화
화학 장갑을 이해하려면 세 단어를 구분해야 한다. 셋은 전혀 다른 현상이다.
- 관통(penetration): 바늘구멍이나 봉제선 틈으로 액체가 새는 것. 눈에 보이는 결함.
- 투과(permeation): 구멍이 없는데도 화학물질이 재료를 분자 단위로 통과하는 것. 안 보인다.
- 열화(degradation): 화학물질에 닿아 장갑 재료 자체가 녹거나 부풀거나 딱딱해지는 것.
EN ISO 374의 핵심 등급은 이 중 투과를 잰다. 가장 위험한 게 안 보이기 때문이다.
침투 시간(돌파 시간): 몇 분이나 버티나
투과는 시간 싸움이다. 화학물질이 장갑 안쪽으로 새어 나오는 속도가 일정 기준(1.0 µg/cm²/분)에 도달하는 순간을 “돌파 시간”이라 한다. 시험은 EN 16523-1 방법으로 한다.
돌파 시간이 길수록 등급이 높다. 1등급부터 6등급까지 있다.
| 등급 | 돌파 시간 | 뜻 |
|---|---|---|
| 1 | 10분 이상 | 잠깐 |
| 2 | 30분 이상 | 짧은 작업 |
| 3 | 60분 이상 | 1시간 |
| 4 | 120분 이상 | 2시간 |
| 5 | 240분 이상 | 4시간 |
| 6 | 480분 이상 | 8시간(전일) |
오해하면 안 된다. 2등급(30분)은 “30분간 막는다”가 아니라 “30분쯤부터 피부에 닿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 전에 장갑을 벗고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
Type A·B·C: 몇 가지 화학을 막나
침투 등급이 “한 화학을 얼마나 오래” 막느냐라면, Type은 “몇 종류”를 막느냐다. 시험용 화학물질 18가지 중 몇 개를 일정 등급 이상으로 막는지로 정한다.
| Type | 조건 | 뜻 |
|---|---|---|
| A | 6종 이상을 2등급(30분 이상) | 가장 넓게 막음 |
| B | 3종 이상을 2등급(30분 이상) | 중간 |
| C | 1종 이상을 1등급(10분 이상) | 기본 |
라벨에는 삼각플라스크 그림 아래 Type 글자와, 막아내는 화학물질의 코드(예: A K L)가 같이 찍힌다.
시험에 쓰는 18가지 화학물질 (A~T)
EN ISO 374는 대표 화학물질 18종을 정해두고, 그중 무엇을 막는지 코드로 표시한다. 2003년판 12종에서 2016년판 18종으로 늘었다(코드에 Q·R은 없다). 코드를 알면 라벨만 보고 “내가 쓰는 약품을 막는지” 확인할 수 있다.
| 코드 | 화학물질 | 흔한 쓰임 |
|---|---|---|
| A | 메탄올 | 연료·세정 |
| B | 아세톤 | 매니큐어·페인트 제거 |
| C | 아세토니트릴 | 도료·접착제 |
| D | 디클로로메탄 | 페인트 스트리퍼 |
| E | 이황화탄소 | 고무·화학 제조 |
| F | 톨루엔 | 페인트·신너 |
| G | 디에틸아민 | 에폭시·우레탄 |
| H | 테트라하이드로퓨란 | 접착제·용제 |
| I | 에틸아세테이트 | 래커·페인트 |
| J | n-헵탄 | 휘발유·용제 |
| K | 수산화나트륨(가성소다) | 세제·배수구 세정 |
| L | 황산 | 배터리액·금속 세정 |
| M | 질산 | 금속 가공·에칭 |
| N | 아세트산(빙초산) | 식초·세정 |
| O | 암모니아수 | 세정제 |
| P | 과산화수소 | 표백·소독 |
| S | 플루오린화수소산(불산) | 유리 에칭·특수 금속 |
| T | 폼알데하이드 | 방부·소독·접착제 |
EN 374-5: 세균과 바이러스
화학과 별개로, 미생물을 막는지는 EN 374-5가 본다. 세균과 곰팡이 차단은 누출 시험(EN 374-2)으로, 바이러스 차단은 ISO 16604 방법으로 확인한다.
바이러스 시험은 진짜 바이러스 대신 파지(Phi-X174 박테리오파지)를 압력을 줘가며 장갑에 들이민다. 통과하면 생물 위험 표시 아래 “VIRUS”라는 글자가 찍힌다. 의료·실험실용 장갑에서 이 표시를 확인한다.
실험실 ≠ 현장: 숫자를 그대로 믿지 마라
등급은 실험실 기준이다. 가만히 둔 평평한 시료를, 정해진 온도에서 잰 값이다. 실제 작업은 손이 움직이고, 땀과 체온으로 따뜻하며, 장갑이 접히고 늘어난다.
이런 조건은 돌파 시간을 앞당긴다. Chao 등(2011)의 연구는 합성피혁 공정에서 DMF·MEK가 네오프렌 장갑을 투과하며, 상온에서 말려 5일간 재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새 장갑 수준의 보호력이 회복되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즉 라벨 등급은 상한선이지 현장 보장값이 아니다.
한국은 의무 인증: 유기화합물용 안전장갑
화학 장갑은 국내에서 특별 대접을 받는다. EN388 같은 기계용 장갑은 자율 영역이지만, 유기화합물용 안전장갑은 국가 의무 안전인증(KCs) 대상이다. 전기용 절연장갑과 함께 단 둘뿐인 의무 인증 장갑이다.
기준은 KS K ISO 374-1로, EN ISO 374-1을 그대로 채택했다. 그래서 시험 방법과 Type 분류, 침투 등급은 유럽과 같다. 국내에서 화학 장갑을 살 때는 KCs 마크를 확인하면 된다.
그래서 그 에코그립 장갑은
총정리 글에서 본 그 친환경 장갑에는 EN388·EN407·ANSI는 있어도 EN ISO 374가 없었다. 이제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그 장갑은 베임과 열을 막도록 설계됐지, 화학물질을 막도록 만든 게 아니다. 시너로 붓을 빨거나 가성소다로 배수구를 뚫을 때 그 장갑을 끼면, 라벨엔 인증이 가득해도 정작 필요한 보호는 없다. 작업에 맞는 인증을 봐야 하는 이유다.
관련 자료와 출처
표준 원문 (1차)
– EN ISO 374-1:2016+A1:2018 — 화학물질 보호 장갑(Type·침투 등급)
– EN 16523-1 — 투과(침투) 시험법
– EN ISO 374-5:2016 — 미생물 보호 / ISO 16604 — 바이러스 시험
– KS K ISO 374-1 — 국내 대응 표준 (한국표준정보망)
공인 시험기관·기관 자료 (2차)
– EN ISO 374-1:2016 화학 보호 장갑 가이드 (HexArmor)
– 화학 보호 장갑 요구사항 (SATRA Technology)
– 보호구 안전인증 안내 (산업안전보건인증원)
– 작업장갑 인증 총정리 (별고래)
침투 등급(10~480분)·Type A/B/C 기준·18종 화학물질 목록은 EN/ISO 표준과 공인 시험기관 자료로 교차 확인했다. 유료 표준 원문 전체와 일부 시험 농도는 직접 열람하지 않았으니, 실제 약품 적용 시 제조사 화학적합성표·시험성적서로 최종 확인을 권한다. (Claude Opus, 2026-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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